[추천 작가] 이재명, 도시 공간 속의 이상한 사물들
[추천 작가] 이재명, 도시 공간 속의 이상한 사물들
기이한 오브제들이 영감과 몽상을 호출하는 매개들이자 작품의 소재가 되다
  • 박영택 경기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 승인 2018.10.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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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내려다 본 지붕(상아색), 캔버스에 유채, 97 x 162.2 cm, 2017 (출처: 윤승갤러리)
이재명, 내려다 본 지붕(상아색), 캔버스에 유채, 97 x 162.2 cm, 2017 (출처: 윤승갤러리)

 

이재명작가의 눈과 마음을 특별히 자극하는 도시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기이한 오브제들이 영감과 몽상을 호출하는 매개들이자 작품의 소재가 되다 

도시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촘촘히 관리되고 점유되어 있지만 동시에 그 사이로 예기치 못한 공백, 무수한 틈들이 개입하고 있다. 또한 도시는 다양한 구조물/사물들로 채워져 있고 그것들은 저마다 특정한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미끄러져 본래의 맥락에서 빠져나오기도 한 다. 이재명은 도시풍경에서 문득 만난 특정 공간(무수한 틈)과 오브제에 매료가 되었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다. 작가의 신체가 도시와 반응한 침전물이 그림이 된 것이다. 

도시 공간의 어느 한쪽 또는 건물의 한 귀퉁이에 놓인 구조물, 혹은 기계부품과 포장된 물품들은 호기심과 함께 그것 자체로 매력적인 오브제로 다가왔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된 상품, 기계들이 심미적인 대상이 되었고 그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이는 뒤샹이다. 이미 인상주의 작가들에 의해 도시풍경과 사물들은 회화적 소재로 적극 다루어졌다. 이후 자연, 땅은 추방되고 자본주의가 만든 도시풍경과 사물들이 그림이 소재가 되었다. 도시는 계절의 변화와 무관한 노동을 행할 수 있게 해주고 계절의 리듬에 종속되었던 농부들과는 다른 생을 강제한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은 디지털세계에서 현실감, 몸의 느낌은 확연히 소멸되고 있다. 한병철에 의하면 “세상의 디지털화란 완벽한 인간화 및 주체화라는 것이라 땅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땅의 예찬) 

따라서 동시대 작가들은 땅과 정원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도시와 공장, 그리고 차가운 금속성과 플라스틱 사물들에 갇혀 산다. 그것이 만든 인위적이고 기이한 공간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거나 낯설게 바라보기도 한다. 이재명의 회화는 바로 그 틈에서 서식한다.

 

이재명, 극장, 캔버스에 유채, 162 x 227.3 cm, 2017 (출처: 윤승갤러리)
이재명, 극장, 캔버스에 유채, 162 x 227.3 cm, 2017 (출처: 윤승갤러리)

 

예술은 한갓 평범한 풍경과 사물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 다가오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다. 

한갓 비근한 일상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이상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늘 보던 대상이자 수시로 접하던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이유를 알 수 없이 다가와 낯선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거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정 장면이 기이하게 말을 건네고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을 딱히 언어나 문자로 설명하거나 기술할 수는 없다. 어휘가 부재해 절망하는 사이 이미지는 이를 대신하고자 하지만 물론 이것도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그러한 시도를 감행한다. 

작가는 그 모습을 자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른바 바르트가 사진의 한 요소로 언급한 풍크툼 punctum과 유사한데 풍크툼은 정보를 주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그것은 ‘새겨진 것’의 의미로 관찰자의 마음을 꿰뚫고 흔들어놓은 것을 말한다. 우연히 본 특정 사물이 총체적으로 묘한 분위기를 만들며 자신을 사로잡은 것이다. 비로소 그 대상들과 작가의 교감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예술이다. 이른바 접신이자 사물과의 교감이며 물활론적 상상력이 작동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해서 사물은 주체가 되어 그것을 바라보는 이와 대등한 존재가 된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감지하는 것을 그리는 일이 회화일 것이다. 이재명이 그린 것 또한 특정한 풍경을 재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공간/사물이 자신에게 주었던 인상, 경험, 기이한 만남의 기억, 그 아우라에 도달하려는 모종의 제스처로 보인다. 사실 모든 그림은 상당히 애매한 것을 그리려는 허망한 시도일 수 있다. 단지 자신을 날카롭게 찔렀던 한 순간의 분위기, 감각을 재현하고자 하는 일인데 사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징후적 풍경’의 형상화한 작품기법 

이재명이 그리고 있는 것은 먼 거리에서 힐끗 본 낯선 풍경, 사물이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작가는 그 낯설고 이상한, 그러면서도 어딘지 흥미로운 존재를 대상으로 삼아 그렸다. 일부를 크게 확대하거나 부분적으로 절취한 구도는 그러한 의도를 드러내는 고안이다. 동시에 그 대상의 존재를 처음 접했을 때의 정서적 느낌, 여러 스치는 생각의 접속을 보여주고자 하듯 속사의 필치로 훑어 나간다. 지극히 가볍고 얇은 도시의 속성은 평면적인 붓질을 통해 가시화되고 유동적이며 빠르게 질주하는 도시의 시간과 속도는 그만큼의 흐름을 동반하는 물감을 통해 시각화되기도 한다. 분명 스치듯 포착된 도시의 풍경이다. 이처럼 가볍고 빠른 붓질과 간략한 대상의 처리, 얇은 물감의 도포는 전적으로 사물 자체를 심리적으로 포착하고자 한 의도를 드러낸다. 색채는 밝고 명징하며 납작하게 칠해져 있다. 몇 번의 평면적인 붓질로, 원색의 물감으로 마감되어 있어서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한데 이는 그만큼 도시 속의 사물들이 지닌 형식적 요소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들은 어딘지 덧 없고 공허하며 모호해서 실체가 없어 보인다. 도시에서 사는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과 사물들의 진정한 내부를 여간 해서는 포착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여러 사물로 채워진 도시풍경이 뿜어내는 모종의 징후를 읽어내고자 한다. 그 흐름, 기운, 냄새를 맡고자 한다. 모종의 ‘징후적 풍경’을 형상화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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